결혼한 지 10년 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9년 동안의 딩크족, 그리고 부모가 된 삶도 1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딩크족과 부모가 된 후의 두 가지 삶을 겪어본 지금, 부모가 된 후의 삶은 생활패턴, 소비패턴, 감정 등 수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는 왜 딩크족이 되었었는지, 9년 간의 딩크족 생활과 딩크족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공개해 보겠습니다.
딩크족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도 처음부터 딩크족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결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딩크족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관심도 없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저희가 딩크족이 되어갔던 과정부터 지금까지의 모습들을 기억을 더듬어 담아보겠습니다.
결혼 1~3년 차 : 딩크족이 무엇인지 관심도 없던 시절
꽃길 같은 결혼 생활은 우리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29살이 시작될 무렵, 우리 모두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을 했습니다. 방을 구할 보증금이 모자라,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기왕 함께 사는 거 결혼을 하면 어떻겠냐는 양가 부모님의 말씀에 얼떨결에 상경한 지 4개월 만에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순식간에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보증금 1,000만 원으로 둘이 살만한 8평짜리 원룸을 구했고, 그렇게 신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힘들어도 행복했던 결혼초기
"맞벌이로 2~3년 열심히 모아서 조금 더 좋은 집으로 옮기면 그때 아이를 가져보자." 이러한 막연한 생각만 갖고 각자 직장생활을 하는데 전념을 했고, 차를 살 여유도 없어 주말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바람을 쐬러 다니면서 평범함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금요일 밤에 기분 좋은 주말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버스 두 정거장정도의 거리를 손 잡고 걸어서 동네 목욕탕을 들러 목욕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야식을 사 와서 영화를 보면서 먹기도 하는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현실에 부딪히다
계획과는 달리 현실에 부딪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쁜 일상, 돌아오면 눈앞에 펼쳐지는 좁은 공간, 답답한 공기, 정리해도 정리되지 않는 방, 밤마다 울리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리, 돈 모으는 속도보다 집 값 올라가는 속도가 훨씬 빠른 현실, 이 모든 것에 지쳐가고 서로 예민해지는 날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배려와 이해보다 이기적인 모습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투는 날도 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원룸생활 3년째, 3년간 악착같이 모은 5천만 원과 보증금 1천만 원을 가지고 서울을 벗어나더라도 쾌적한 주거 환경을 꾸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사를 가다
"방에서 열 발자국이라도 걸어 다닐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항상 생각했단 작은 바람을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을 벗어났고, 역시나 아파트에는 들어갈 돈은 없어서, 대출을 받아 고심 끝에, 방 3개가 있는 19평짜리 주거용 오피스텔로 이사를 갔습니다. 이사 첫날 와이프의 행복해하던 얼굴은 아마 평생 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맨날 움츠려 있었는데 어깨가 펴지는 것 같아!." 별거 아닌 말인데,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한 마디였습니다. 그렇게 제2의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차도 구매하고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결혼 4~8년 차 : 아이가 굳이 있어야 해?
달라진 삶의 질, 커지는 씀씀이
갑자기 한 순간에 삶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거실과 방이 분리된 쾌적한 환경,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자동차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여유, 모든 것에 만족했고 이 생활에 적응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정지출도 늘어나고, 씀씀이도 전보다는 커지면서, 월급은 올라가는데 저축하는 돈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기보다는, 조금 덜 모아도 이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하다는 것에 둘 다 동의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더 행복해
분명 막연하게라도 신혼 초기에는 열심히 2~3년 모아서 집도 옮기고 아이도 가져보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사는 게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하니까 1년만 더 이렇게 지내자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미루게 되었고, 그 1년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어느 순간 '아이가 굳이 있어야 해?'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오로지 우리만 생각하기 바빴던 날들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생기므로 인해 이제 겨우 누리기 시작한 행복한 삶들을 다시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당시 주변에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결혼만 했지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딩크족의 삶에 대해 저의 내면에서 조금이나마 합리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나은 삶을 원해
분명 새로운 집에 이사를 했을 때만 해도 집도 넓어 보이고, 삶의 질도 달라졌습니다. 심지어 딩크족의 최대 장점인 맞벌이 소득을 모두 우리를 위해서 쓰면 됐기 때문에, 원하면 국내여행도 가고, 1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도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죠. 이 생활 또한 적응되기까지 2년이면 충분했습니다. 분명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던 그때의 순간이 이제는 평범하고 아무 느낌 없는 삶이 되기까지 딱 2년이 걸렸습니다. 욕심이 끝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을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에 더 나은 삶,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덧 아이에 대한 생각을 서서히 지우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 묻지 않아도 아이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되, 더 나은 삶을 위해 저축과 재테크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아이=돈'이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자리 잡혀 갔고, 누군가 왜 아이를 낳지 않냐고 물어보면, 지금의 완벽학 수입과 지출 사이클에 아이로 인한 리스크를 이유로 들어가며,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그렇게 딩크족이 되었다
말씀드렸듯이, 처음부터 딩크족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딩크족이 된 이유 역시 부동산, 물가 상승 등의 사회문제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행복한 삶을 원했던 것뿐이고,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라봤을 때, 무엇이 행복한 삶이 될지를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이제야 겨우 우리도 살만해졌는데, 아이가 생기면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솔직히 지금의 삶을 포기하고 나를 희생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가끔씩 만약 아이를 낳아도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풍요로운 여가생활도 가능했다면 분명 이미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있습니다.
딩크족 레벨 테스트
9년 동안 제가 느낀 경험을 토대로 딩크족이 되어가는 레벨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나눠봤습니다.
1. 딩크족 초기
"아직 아이 계획은 없니?" 이런 질문 다들 받아보신 적 있으시죠? 제 경험상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조금은 대답을 피하고 싶거나, 솔직하게 대답이 나오지 않고 "아직은 조금 더 즐기고 싶어서요.."라든지, 질문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계기만 생기면 언제든지 딩크족을 청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딩크족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딩크족 중기
이 질문을 받고 당당하게 딩크족에 대한 장점을 설명하고, 단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면서도 논리적인 반박이 가능하며,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면 딩크족 중기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타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을 정도라면, 그만큼 고민도 많이 하고 경험하면서 합리적인 선택을 한 똑똑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3. 온전한 딩크족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딱히 대답할 내용도 떠오르지 않다면 온전한 딩크족의 삶을 즐기고 있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오랜 시간 이 삶에 적응하고 만족하면서, 아이에 대한 생각을 잊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1+1=2인데 어떻게 더 설명을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으신가요? 저희 부부는 2번과 3번이 사이쯤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며
저는 지난 9년을 후회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또한 부모가 된 지금의 삶도 그때와는 다른 면에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딩크족, 비혼, 저출산 등과 같은 단어들은 결국 '행복'과 가장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보다는 인식이 변화했지만, 아직도 딩크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성인인 그들도 나름 무엇이 가장 행복한 삶인지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또한 각박한 사회에서 '행복할 권리'라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 선택을 두고, 어떠한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충고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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