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검찰청통합콜센터(1301)에서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바로 과거에 피해를 입었던 휴대폰 개통 사기 피해 사건의 수사 결과에 대한 통보였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잊고 있었는데 당시 기억이 다시 떠오른 김에 내가 당했던 사기 사건을 고소하는 과정과 겪었던 심정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기는 갑자기 당하는 게 아니다
살면서 내가 사기를 당할 거라는 생각을 얼마나 해봤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모든 건 한 순간인 것 같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것은 없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눈에 뻔히 보이는 수법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이유는 바로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었다.
피의자에게 과거에도 나를 포함, 나의 지인까지 수 차례 휴대폰 거래 경험이 있었고, 정상적으로 구매가 이뤄졌기 때문에, 큰 의심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내가 당한 수법도 제삼자가 보면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입신청서 작성 시, 의심을 두세 번 했어야 했다. 분명 일시불로 계좌이체를 했는데, 24개월 할부로 작성이 되어 있었다. 당시 24개월 할부를 지워달라고 요청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하면서 결론은 '익월 요금에는 정상적으로 0원 청구가 된다.'며 안심하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텐데, 여러 번의 거래에 쌓인 신뢰가 내 의심의 벽을 무너뜨렸다.
아니나 다를까, 익월 청구 금액에는 24개월 할부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피의자의 연락 회피
피의자에게 연락해서 따졌지만, 너무 태연하게 전산 오류로 인한 실수 같다고 기다려 보라는 대답을 받았다. 이때부터가 시간 끌기의 시작이 아니었다 싶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기 피해의 고소는 피해 사실을 인지한 날로부터 6개월 내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인정이 된다고 한다. 6개월이 지나면 사기죄가 아니라 민사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여, 상황이 더욱 복잡해진다. 이를 악용하기 위해 시간을 끈 것이 아닌가 한다.
- 전산 오류로 인한 착오라, 다음 달 요금에 반영이 다시 될 거라고 하여, 또다시 한 달 경과
- 한 달 후, 여전히 할부금이 남아 있음
- 교통사고로 일주일 정도 일을 할 수 없다고 하여, 또다시 일주일 경과
- 수신 차단 후, 잠수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이런 수법에 당한다고?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벌어진 일이라 일단은 믿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피의자 신상 파악 방법
고소장을 제출하기에는 피의자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가입신청서에 적힌 상호명, 이름, 전화번호가 다였다. 피의자 정보를 자세하게 제공하면 조금 더 빠른 수사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아래 방법을 사용해서 피의자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 통신사 고객센터 앱 접속 - 우측 상단 버튼 클릭
2. 마이페이지 - 가입정보 관리 클릭
3. 가입대리점 확인
이렇게 확인한 경로로 대리점에 연락하여 피의자 신상 정보를 요구했다. 알고 보니 해당 대리점도 단말기 8대, 약 천만 원 정도의 공기계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잠적이 확인되어 고소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각각 고소를 진행하기로 하고, 피의자의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증 사본을 받을 수 있었다.
고소장 제출
고소장 양식을 작성하고, 피의자 인적사항 서류를 들고 가까운 경찰서에 방문해서 고소장을 제출했다.
대략 1주일 후, 조서 작성을 위해 방문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고, 퇴근 후 경찰서를 방문했다. 30분~1시간 정도 조서 작성을 한 뒤, 담당 형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부분의 사기범들은 검거가 되는데,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수사부터 검거까지: 3년 간의 심정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검거는 둘째치고 수사기관의 태도에 여러 번 실망하고 화가 나고 '이래서 사기꾼이 먹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고소장 제출 후, 불과 3일 만에 '기소중지' 처분 연락을 받았다.
관할 경찰서에 전화해서 담당 형사에게 물어보는 내내 '귀찮음'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 기소중지 사유를 듣고 나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 거주지 방문을 하니 아무도 없었다
-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니 수신거부 상태다
- 피의자를 소환할 방법이 없어 기소 중지되었다
-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
- 혹시라도 카드 사용이나 휴대폰 사용 현황이 발견되면 움직일 수 있다
- 하지만 대부분 현금 사용이나 대포폰, 타인 명의 휴대폰을 쓰기 때문에 장담할 수 없다
'고소장 제출하고 조서 작성까지도 1주일이 걸렸는데 고작 3일 만에 수사를 보류한다고?' 순간 나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당연한 수순일 수 있겠지만,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나로서는 저런 식으로만 설명을 하니 납득이 어려웠다.
*기소중지: 피의자 소재가 불명이거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수사를 진행할 수 없을 때 사건을 잠정 보류한다.
이 일을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한 뒤, 나는 더욱 바보가 되었다.
'경찰도 바쁘겠지'
'피해 금액이 많지 않으니까 정신 건강을 위해 포기해라'
'그냥 잊어버려라'
'바쁜 경찰 가지고 그렇게 연락하는 것도 민폐다'
피해자가 수사 기관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물어보는 게 민폐인가? 피해 규모를 떠나 왜 유독 사기는 피해자가 잘못한 것 같은 인식을 주는지, 실제로 겪어보니 너무 억울한 심경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2023년 5월 보완수사요구로 상태가 변경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왜 보완수사요구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3년이라는 시간에 나도 덤덤해진 것도 있었지만, 바쁜 경찰 가지고 민폐라는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 선뜻 연락을 하기가 꺼려졌다.
다시 아무 소식 없이 5개월이 흘렀고, 10월에 다시 한번 타관이송이 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역시나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결국, 11월 1일 불구속구공판 연락을 받았다. 피의자가 검거된 것이다. [대법원 나의 사건검색]에서 확인해 보니, 재판일이 명시되어 있었다.
불구속구공판: 피의자는 수사단계에서 불구속 상태로 수사가 진행되었고, 기소 시에도 불구속 상태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됨
3년 끝에 피의자가 검거되었지만, 여전히 씁쓸한 마음은 남아 있다.
피해 당시 화가 나고 억울했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바래지고 무덤덤해진다. 이러한 감정과 주변 사람들이 말들이 뒤섞여, 재판 후에 결과 통보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배상명령신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지만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금액의 규모를 떠나 사기 피해가 왜 피해자를 더 초라하게 하는지, 피의자들은 왜 처벌을 받아도 사기 행각을 다시 벌이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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